파브르 곤충기 완역판

작년 서점가에 파브르곤충기 완역본(10권)이 새로 나온 것을 보고 흥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내심 신기해서 여러 경로를 통해  출판 과정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10여년 전  출판된 최초의 완역판" 파브르의 곤충 이야기" (탐구당,1999년) 를 내가 소장하고 있으며 이 책은  한정판이었던 데다가 현재는 도서관 이외에는 시중에서 구해 보기 힘든 희귀본인 때문이다.그것은  외환위기 직후  출판사의 부실한 저비용 제작으로 인해 인쇄 오류가 너무 많아 당시 역자들이 재출간을 하기로 하고 판매를 중단한 상황이라 이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이다.. 나 역시 시중에서 구한 것이 아니라  2000년경 탐구당 본사의 얼마 안되는 재고분에서 겨우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번에 완역본이니 정본이니 하며 광고하는 것을 보며 왠지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미 기존 번역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불문학 전공자가 아닌 이 번역자가 과연 3년이란 단기간에 자력으로 이 방대한 책을 번역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 번역판을 텍스트로 하고 일반 곤충용어 전공자로서  곤충 용어를  일부 보완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면 모르지만 말이다. 그 이유인즉 지난 10년간 곤충이야기를 수없이 통독하였지만 이 책은 단순한 곤충용어집이라거나  또는 곤충생태연구서에 그치지  않으며 진짜 핵심포인트는 이를 뛰어넘는 수준 높은 다변적이고  인문학적 통찰에 있는 것이다. 즉, 이 책에는 19세기 남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오랜 풍속, 속담, 민요, 사람들의 생활상이 토속어와 함께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으며 박식한 학자 파브르 또한 곤충의 관찰을 통한 인생의 통찰을 자신의 백과전서적 지식과 여러 언어적 유희를 통해 감칠맛나게 전개해나가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어느 정도 그저그런 불어 해독력만 가지고 번역 가능한 책은 절대 아니며 곤충학 지식만 가지고   번역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결국 이 책에서 파브르가 구사하는 프랑스어의 그 은유적이고 해학적인 표현을 우리 말로 번역하는 작업은 장기간의 번역 경험과 전문성을 지닌 불문학자의 식견이 아니면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파브르의 라틴어 실력이란?  더불어 무엇보다도 이 책은 그 엄청난 분량으로 인해 번역기간 또한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참고로 원로 불문학자 세분이 번역한 탐구당판은 번역기간만 13년, 실제 출판까지는 20년이 걸렸다 ). 곤충학에 애착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이 책의 번역에 환상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지금까지 한국어판이 나오지 못한 것은 어문학적인 한계와 너무 방대한 분량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번 처럼 단 3년 정도의 단기간에 누구나 쉽게 번역이 가능했다면 이미  프랑스 유학 경력자나 불어 전공자에 의해 한국에도 여러 완역본이 나와 있어야 했을 것이다. 이것이 원작인 프랑스판 만이 아니라. 독일어나 영어판을 텍스트로 한 완역본이 지금까지 없었던 이유이다. 탐구당판 "곤충이야기"는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었다. 10년이 넘는 번역 과정을 거친  불문학자들의 원고를 출판,인쇄 과정에서의  오류로 인해 역자들이 재간을 위해 출판사의 판매를 중단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번역자들은 개정판을 내기도 전에 고령으로 모두 고인이 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직후 단기간에 또 다른 번역판이 나온 것이다. 이번 번역자의 서문을 보니  자기가 이제야 원서를 구해 번역하기로 마음먹고 3년만에 번역했다는 문구가 있는데 이 책이 그렇게 단기간에 콩볶아 먹듯이 뚝딱 나올 책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적당히  번역 능력을 검증 받기에는 너무나도 그 전개 상황이 어설프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이미 훨씬 앞서서 첫 완역본이 세상에 나와 누구나 구해보고 참조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 번역자의 지금까지의 번역이나 외국어저술 경력을 조사해 보아도 전무하다시피하며 기타 그의 번역 능력을 인정할만 한 아무런 자료도 발견되지 않는다..   결국 실제로 이 사람의 번역 내용을 기존 탐구당판과 꼼꼼히 비교해 보기로 했다 .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놀라움 그 자체였다. 왜일까?  방대한 책 전체 내용에 걸쳐 그 대담성이 경악할 정도였다 .  번역자라는 사람도  책 머릿말에서 본인 스스로도 1999년 탐구당판을 언급하고 있던데 그쯤되면 그가  이미 그 책을  텍스트로 깊이 참조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일 것이고,이러한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종전 작품이 절판된 상태인 것을 이용해서 자신이 최초로 정본을 냈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기가 막힌 노릇이다. 결국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관심 있는 곤충기 독자들은 가능하면 두 판본을 직접  비교해 보시기 바란다. 금방 정답을 얻을 것이다.